인어의 값어치에 대해, 너는 아니?
인어의 눈물은 약이 되기도 하고 보석이 되기도 하지. 기쁨의 눈물은 아주 값비싼 보석이라, 인간들이 더 탐을 낸다고 해.
인어의 눈물로 만든 약은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고, 인어의 눈물로 만들어진 보석은 보석 중에서 최고급이야. 특히나 양쪽 눈이 다른 인어라면? 말 할것도 없겠지. 오드아이의 인어는 극도로 희귀하고, 슬플때 흘리는 눈물도 값어치가 나가서 모든 사람이 그 인어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었지.
그런 사실을, 한 순진한 인어 아가씨는 몰랐어.
인간 구경에 들떠 자기도 모르게 불 가까이로 갔던 그녀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 잡혀버리고 말았지.
그녀는 매일 밤을 울며 지새웠고, 그녀의 눈물은 아주아주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어. 그렇게 몇 년을 그녀는 작디 작은 수조에 갇혀 지내고 있었지.몇 번 주인이 바뀌었는지 그녀는 세보지도 않았어. 그저 갑갑한 수조 밖에서 나갈 날만을 손 꼽아 기다리고 있었지. 그렇게 애절하게 그 날도 달을 보고 있었어. 그러자 그 곳에서 이상한 그림자가 나타난거야.

“안녕 인어아가씨?”
“누구세요?”
그는 회색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지고 꽤나 요염하게 생긴 사내였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아름다움이었지.

“그냥 지나가던 사람? 그나저나 아가씨, 갑갑하지 않아?”
“....갑갑해요.”
“마음 같아선 빼주고 싶은데, 내가 그럴 처지가 아니네.”
“....”
“그 대신에, 내가 말 동무가 되어줄게?”

그는 매일 밤 찾아와서 수조 밖의 이야기를 해주었어.
즐거운 축제, 아름다운 들판, 향기로운 꽃, 새가 지저귀는 숲... 그럴때마다 인어 아가씨는 눈을 더욱 반짝였지.
나가고 싶은 욕망은 날이 갈수록 커졌어. 그렇게 몇달이 또 흘렀어.
인어는 매일 찾아오는 그의 이름도 알게 되었어. 페리드 바토리. 그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그녀는 수도 없이 머릿속으로 이름을 되뇌었어. 하지만 어느날 사건이 터져버리고 말았지.

가문이 망해서 재산이 모두 한 가문에 몰수 당하는 상황이었어. 당연히 재산 중 하나였던 인어도 거기에 포함되었지. 눈썹이 요상하게 생긴 한 남자가, 그녀 앞에 섰어.

“이게 정말 인어?”
“네. 아마 이 가문의 재산 중 가장 비싼 물건일 겁니다.”
“흐음... 악취미군.”

그녀는 자신을 물건취급하는 인간들이 미웠지만 그녀에겐 아무 힘도 없었어. 그저 자신을 해치지 않길 바라며 두 손 모아 기도할 뿐이었지. 그 작디 작은 수조는 그들의 손에 실려 어디론가 옮겨졌어.

“헤에... 형님이 또 뭘 가져온 걸까~”
얼마나 지났을까. 인어는 깜빡하고 잠이 들었고 귀에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지.

“인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과 똑같은 은발의 푸른 바다를 담은 듯한 눈을 가진 남자였어. 그의 외모에 순간 흔들린 그녀였지만, 어차피 인간은 똑같다며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았지.

“내가 나쁜 짓을 할 것 같아 그러니?”
하지만 그는 상냥하게 그녀의 눈을 맞추면 이야기를 했어. 그녀는 적잖이 놀랐어. 여태 인간들 중에 그녀의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자는 단 한명도 없었거든.

“...인간들은 다 똑같아.”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가 말하자 그 남자는 잘생긴 얼굴에 주름을 만들었어.
“하지만 나는 다를거야.”
그녀가 못 믿겠다는 듯 그를 바라보자, 그는 싱긋 웃으며 그녀를 어디론가 데려갔어.

“...?”
그 곳에는 아주 큰 호수가 하나 있었어.
“여기라면, 조금은 편하려나? 미안해. 바다로 보내주고 싶은데도...”
“고마워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하자 그도 부드러운 표정을 띄며 조심스레 물 속에 넣어주었어

얼마만의 넓은 물인가. 그녀는 이리저리 호수를 헤엄치다 그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어.
“너는 아름답구나.”
“...그런가요?”
“내 이름은 히이라기 신야. 너는?”
“...미지카이 유메노.”

그것이 둘의 만남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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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메노는 차분히 차를 내리고 있었다. 오랜만의 하쿠와의 티타임인지라 더욱 심혈을 기울이려는 듯 했다. 그런 그녀의 뒷 모습을 보며 하쿠는 입을 열었다.

“...사실입니까?”
“뭐가?”
“...맞선 보신다는 것 말입니다.”
유메노의 물을 내리던 고운 손이 멈추었다.

“다른 가문과 맞선을 본다고 들었습니다.”
“...” 그녀는 조용히 그저 물을 내리기 시작했다.
“유메노 님.”
“자, 다 됐어.”
유메노는 방긋 웃으며 그에게 차를 건냈다. 그녀처럼 따스한 차였다. 그녀는 천천히 찻잔에 입을 대고 차를 음미하였다.

“유메노 님... 말씀해주십시오.”
그녀는 이내 찻잔에서 입을 떼어냈다.
“...맞아.”
“정말 이십니까...?”
“....”
“신야 소장님을... 사랑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
유메노는 그저 대답 없이 하쿠를 바라보았다. 하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저는... 왜 맞선을 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야 소장님과 이어지면... 유메노 님에게도, 가문에게도 좋을텐데...”
“하쿠...”
“유메노 님.. 저는 유메노 님이 단 한 번이라도 가문에 속박되지 않고 행복을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저의 유일한 삶의 사명이고, 저의 단 하나의 염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있으면서 행복하지 않으면... 저의 삶의 이유도... 제가 당신을 양보한 이유도... 모두 사라질 테니까요.’

하쿠는 뒷 말을 삼키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곧고 아름다웠다.

“하쿠... 나는... 나도 그것 만큼은 양보하지 않을거야. 고마워. 날 걱정해줘서.”
그녀의 다정한 말에 하쿠는 조금 안심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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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11시, 근처 숲에서
-F

유메노는 작은 쪽지를 제 품 속에 숨겼다.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유메노와 신야, 그리고 다른 월귀조 부대원들은 적의 동태를 살피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밤이 깊었네...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하도록 하지.”
신야는 다른 부대원들을 보며 말을 하였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모닥불이 따스한 빛을 내고 있었고 몇몇 부대원들은 잠을 청하거나 내일의 임무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메노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 이내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근처 숲... 근처 숲...”
그녀는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듯 했고 들키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주위를 탐색했다.


“근처 숲에 있다고 했는데.. 어디에...”
한참을 둘러보던 유메노의 뒤에 갑자기 누군가가 와락 하고 안았다.
“...!”
“아가씨~”
“페리드...?! 놀랐잖아요...!”
그녀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고 조금은 상기된 볼이 페리드의 눈에는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가씨는 역시 밤에 보아야 아름다운 것 같아.”
그는 다정한 눈빛으로 유메노를 바라보며 그녀의 눈을 가린 앞머리를 뒤로 자연스레 넘겨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선명한 분홍 눈이 페리드의 눈에 들어왔다.
그 무엇보다 그녀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으리. 페리드는 항상 유메노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차오르는 애정의 감정을 곧바로 입맞춤으로 나타내었다. 유메노는 당황하였지만 익숙한 듯 자연스레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페리드에겐 자극이 되어 유메노를 나무에 살짝 밀어붙이고는 그녀의 옷을 벗기려 손을 뻗었지만-

“바스락-”
“...!”
놀란 페리드는 황급히 그녀에게서 입술을 떼고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유메노...!!”
“신야 씨...?”
신야가 놀란 얼굴로 서 있었다.
“너는...! 귀족 흡혈귀...! 그녀를 놔 줘...!” 신야는 전투태세를 취하며 페리드를 노려보았다.
“신야 씨, 그...”
해명하려는 유메노를 페리드는 막아섰다.
“...?”
“그녀? 혹시 이 여자를 말하는 건가?”
페리드는 빙글 웃으며 유메노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세게 잡는 그의 손 때문에 유메노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 그녀를 놔 준다면 순순히 보내주도록 하지!”
신야는 총구를 페리드 쪽으로 겨누었다.
“안...!”
안된다고 말하려는 그녀의 입을 페리드는 제 손을 막고는 그녀의 목 근처에 입을 가까이 댔다.
“너 이 자식...!”
“뭐, 맛 없어 보이기는 해도 배고프니까 어쩔 수 없겠는걸?”
페리드가 그녀의 목에 이빨을 박아넣으려 할 때, 신야는 곧바로 백호환을 쏘아댔고 그와 동시에 페리드와 유메노의 거리는 멀어졌다.

“아이쿠 무서워라~”
페리드는 여유있게 빙글 웃으며 신야의 공격을 피했다.
“귀찮으니까, 이만 가야겠네. 다음에 또 보자구, 신야 소장?”
그는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고 그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자 마자 신야는 유메노에게 달려갔다.

“유메노...! 괜찮아?!”
“아... 네. 저는 괜찮습니다.”
“너가 하도 안 와서... 걱정했어.”
신야는 부드러운 얼굴로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럼, 갈까?”
“네.”
유메노는 페리드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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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것!!”
큰 소리와 함께 신야는 어깨를 움찔 떨며 놀랐다. 이번 전쟁에서 유메노가 명령을 어기고 동료를 구하여 작전이 조금 틀어졌다는 것. 그것이 장로의 심기를 건드렸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그저 고개를 떨구고 묵묵히 서 있었다. 그런 모습이 신야의 마음을 아리게 하였다.

“죄송하면 다 인줄 아나! 미래의 미지카이 당주가, 그것 하나 제대로 못 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
유메노는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작전이 틀어졌어도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동료의 목숨 또한 구했다. 그녀가 혼나는 이유를, 신야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말을 해보거라!! 네가 무엇을 잘못하였는지는 아느냐!!”
“...저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메노가 감정을 꾹꾹 억누른 목소리로 간신히 말하자 장로는 더욱 노하여 팔을 크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그녀는 다시 감은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상황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신야가, 장로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장로님. 주제 넘는 말이지만, 유메노 중위 덕에 한 사람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히이라기 가문은 빠지게!”
“장로님...!”
“여기는 미지카이 가문의 일일세! 히이라기 가문은 관여해선 안 된다는 말일세!”
신야는 할 수 없이 잡았던 장로의 팔을 놓았다.
“유메노! 따라와라!”
“....”

신야는 장로의 뒤를 따라가는 유메노를 보며 자신은 유메노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위압감 넘치는 건물. 그리고 그 앞에는 신야가 서 있었다. 신야는 한숨을 푹 쉬었다.
“...가문에까지 손 벌리기 싫었는데.”
그는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뭐라고?”
“...미지카이 가문에도 내가 간섭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
쿠레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미지카이 가문이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가문인건 알고 있는거지, 신야.”
“어.”
“알면서도 부탁을 하다니?”
“...히이라기 가문이라면, 할 수 있잖아.”
“재밌군.”
쿠레토는 흥미롭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유는?”
“....”
“뭐, 뻔하지. 미지카이 가문의 차기 당주 때문에 그러는 거겠지.”

쿠레토는 빙글 돌아 창 밖을 보았다. 황폐해진 도시의 빌딩 사이에서 온전하게 살아남은 미지카이 가문이 보였다.

“대가가 따른다는 것 즈음은 알고 있겠지 신야.”
“...응.”
“좋아. 그럼 다음 작전에서 너는 무조건 전선으로 나간다.”
“...”
신야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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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로 10명째 입니다.”
“....” 페리드는 제 이마를 짚었다. 흡혈귀들이 누군가에 의해 죽어나가고 있었다. 인간이 한 짓이라고 하기에는 피가 빨려 죽은 상태였다. 범인은 뻔했다.
“...아가씨.”




달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밤, 은발의 흡혈귀가 다른 흡혈귀의 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목을 물어뜯긴 흡혈귀는 이내 미동없이 정신을 잃었고 그녀는 그대로 제 손으로 흡혈귀의 심장을 뚫었다. 붉은 피가 이내 그녀의 옷을 적셨고, 그녀는 그대로 흡혈귀의 시체를 내던졌다.


“흐응~ 취미 한번 고약하네.”
“...” 입에 묻은 피를 닦으며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페리드.”
“만족해?” 페리드는 빙글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
“아니면, 내 피라도 줄까?”
“...당신의 피를 마시고 이렇게 되었는데, 마시고 싶겠어요?”
“그렇다면 흡혈귀들을 죽이는걸 그만 두는게 어때? 더 이상 하면 곤란해져. ...아가씨가 표적이 될 테니까.”
“...죽이려면 죽여보라고 해요. 어차피 살 희망을 잃어버린 몸. 죽어버려도 상관 없죠. 물론 그 전에 흡혈귀들을 다 죽여버린다면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누구든 덤비라고 하세요. 저는... 이길 자신도 있고 져도 상관 없습니다.”

무미건조한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마음을 깊숙히 파고들었다. 꽤나 아픈 말이었다.
페리드는 다시금 그녀를 바라보았다. 옷은 이미 피투성이였고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다. 찬란한 백발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자.”
페리드는 그녀에게 옷가지를 건내었다.
“....”
그녀는 가만히 옷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랑 비슷한 옷이었다.
“계속 그러고 다닐 순 없잖아.”
“고맙게 받겠지만, 앞으로 제 눈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
“정말로, 죽여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녀는 옷을 들고는 순식간에 그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페리드는 계속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죽인다... 라... 아가씨의 손에서 죽는다면 기꺼이 죽어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페리드는 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별만 떠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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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줄게.”
“....” 유메노는 뜻밖의 말에 페리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잡혀오기 전보다 훨씬 수척해져 있었고, 빛나던 은발도 찬란하게 반짝이던 두 눈도 모두 빛을 잃어 금방이라도 사그라 들 것 같았다.
“보내줄게, 아가씨.”
“...그걸 어떻게 믿고?”
“날 따라와.”
페리드는 그녀의 손을 잡고는 미로같은 저택에서 빠져나와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쭉 가다보면 제귀군 진영이 보일거야.”
페리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순식간에 그의 눈 앞에서 사라졌고, 페리드는 멍하니 그녀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빨리... 빨리 가야해....’
유메노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제귀군 섬멸 작전. 그녀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죽을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한다.
‘내가 가면 분명... 막을 수 있어.’ 그녀는 실날같은 희망을 품고는 달라진 몸을 이끌고 재빠르게 달려갔다.





“...말도 안돼...”
그녀가 도착한 제귀군 진영은 이미 황폐해져 있었다. 유메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잔해 속에서 살아있는 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도... 아무도 없어요...?!”
응답없는 외침에 그녀는 점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손을 떨며 제 집으로 향했다.





“...이럴 수가...”
찬란했던 그녀의 가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하쿠.... 하쿠...!!”
그녀는 급하게 잔해 속에서 하쿠를 찾았다. 수 많은 시체들 속에 익숙해보이는 모습.
“하쿠!!!”
유메노는 달려가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몸이 차고 숨이 끊어진지 오래였다.

“하쿠... 하쿠... 눈을 떠봐... 나야... 내가 왔어...”
그런 사실을 부정이라도 하듯이 그녀는 이미 식어버린 그의 시신을 끌어안은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쿠... 제발... 날 두고 가지마...”
그녀는 또 다시 혼자가 되었다.





제귀군 진영 전체를 돌았지만 생존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절망했다. 자신의 평생을 다 바쳐 지키려고 애썼던 것들이 모두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의 곁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시체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즐겁네요 저 모습!” 리아와 그 옆엔 페리드가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


리아는 신나는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녀의 옆으로 갔다.
“...!”
유메노는 순간적으로 단검을 꺼내어 리아의 목에 대었지만 이내 리아의 손에 의해 저지 당했다.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잖아 아가씨~?”
리아가 빙글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
“어떠세요! 완전히 자유로워진 기분이!”
“...자유...?”
유메노의 눈물진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 자유! 제귀군에서도, 가문에서도! 영영 자유로워지셨잖아요!”
“...하.” 그녀는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내가 원하던 자유는... 이게 아니야.”
내가 원하던 자유는...
“...그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고 싶었을 뿐인데... 어째서.”
그녀는 다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자, 이제 어쩌실 건가요 아가씨!”
“....”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에 있는 페리드도.

“...나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을 거야.”
그 한마디를 남기고 그녀는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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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흡혈귀로 만들어버린지 벌써 몇 주. 그녀는 아직도 방 안에 갇혀 슬프게 울다 쓰러지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 류. 방에 가서 그 아가씨 상태 좀 파악하고 오세요~ 지금은 또 페리드가 없으니 귀찮네요.”
“...응.”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매일 그 때 내 행동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있었다.
그 때 내가 유메노 님을 잡지 않았더라면, 약물을 그녀에게 주입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흡혈귀로 만드는 일에 동조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지금 그녀는 웃고 있었을텐데. 곧 죽을 목숨이라 하여도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행복하게 살았을텐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가슴이 옥죄어오는 것 같았다. 그녀가 갇혀있는 페리드의 방 문 앞에 섰고, 그녀는 이제는 울 힘도 없는 듯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방 문을 열었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방 안은 온통 난장판에, 손목을 그은 듯 바닥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있었다. 그녀는 흡혈귀가 된 후로 매일 그렇게 죽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그녀는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유메노 님.”

내가 그녀를 부르자, 그녀는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피폐해진 그녀의 모습은 여태 내가 알던 그 빛나던 모습이 아니었다. 날개는 이미 갈기갈기 찢겨져 날아갈 수도 없었고, 까맣게 물들어가며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류 씨.”
힘 없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는 나를 불렀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류 씨, 날 죽여주세요.”
그녀가 애원하는 목소리로 나의 옷깃을 잡았다.
“제발... 제발 날 죽여주세요.”
그녀는 내 손을 겹쳐 잡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귀주장비를 꺼내, 날 죽여주세요.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유메노 님...”
나는 그대로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빛을 잃어버린 그녀에게 나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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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유메노는 제 팔목을 날카로운 날붙이로 긁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고 피 또한 몇방울 떨어지다 그쳤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보며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마음대로 죽을수도 없는 몸. 그렇다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에게로 돌아갈 수도 없는 몸.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같이 죽을 수 없는 몸. 그녀는 점점 절망이라는 까맣고 까만 늪으로 빠져들어가만 갔다.


“끼익-“
페리드는 제 방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온통 난장판이었고 그 속에서 그는 누군가를 찾았다.
“...아가씨.”
오늘 또 얼마나 자신의 몸에 해를 가했는지, 주변이 온통 마른 피로 뒤덮여있었다. 피냄새는 여전히 짙게 남아 페리드의 코를 자극하였다.

“....”
유메노는 빛을 잃은 눈동자로 페리드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비틀거리며 아주 위태롭게.

“페리드.”
“응.”
“날 죽여줘요.”
“....”
그녀는 페리드의 옷깃을 잡으며 애원했다. 마치 마지막 소원이라도 되는 듯이.

“제발... 날 죽여주세요...”
애원은 곧 흐느낌이 되었고 그녀는 이내 페리드를 붙잡은채 울기 시작했다.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서럽게 울다 정신을 잃었고, 페리드는 재빨리 그녀의 몸을 받쳐주었다.

“...미안해 아가씨. 정말로.. 미안해.”
페리드는 절망에 빠진 그녀를 그저 안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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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슝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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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aelowo.postype.com/post/4295575
->이 글을 읽고 오시면 이해가 빠릅니다!!


“인간의 감정 때문에 힘들어 하는 거라면 인간이지 않으면 되잖아요.”

페리드는 리아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기한은 정해져 있어요. 인간의 삶은 짧답니다, 페리드. 어때요? 그녀와 사는 영원한 삶.”

페리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녀와 사는 영원이라니. 나락에 빠지더라도 좋을 것만 같았다.

“...아가씨.”
페리드는 제 방문 앞에 또 서서 그녀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이 곳에 온지도 어언 2주가 지날 즈음이었다. 매일 그녀는 울며 잠들었고, 탈진 직전의 상태였다.

우는 소리가 잠잠해지자, 페리드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얼마나 수갑을 떼어내려 애쓴 것인지 그녀의 발목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페리드는 그녀가 잘 때즈음이면 정성스레 피를 닦아내주었지만,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그녀를 보며 페리드는 쓰게 웃었다.
“...미안해 아가씨.”





유메노는 잠에서 깨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왠지 모르게 기운이 빠져 멍하니 그저 창 밖만을 바라보았다. 그 때, 방 문이 열리었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왔다.
“.....”
유메노는 더 이상 울음도 나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차갑게 페리드의 방에 들어온 자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리아, 류, 크로울리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에는...

“페리드.”
잠긴 목소리로 유메노가 그를 부르자 페리드는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날 용서해.”
페리드는 무슨 뜻인지 모를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고는 뒤에 서 있던 세 명에게 눈짓을 보냈다. 크로울리와 리아가 각각 한 팔을 붙잡았고 류는 초록색 약물이 담긴 주사기를 꺼내었다.
“또 무슨 짓을...!”
유메노가 발끈하여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제 팔을 붙잡은 둘의 힘이 더 강했다. 그리고 그 순간 류가 그녀의 목에 약물을 주입했다.
“류... 씨....”
또 다시 정신이 아득해지며 감각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장 페리드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평소의 키스와는 다르게 비릿한 냄새가 났다.
“....!!”
페리드의 피가 그녀의 입 속을 타고 들어가 전신으로 퍼졌고 유메노는 그를 뿌리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타는 듯한 감각이 이내 그녀를 덮쳐왔고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욱씬거리는 느낌과 함께 눈을 떴다. 자신이 눈을 감기 전 본 세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세상.
그녀는 흡혈귀가 되어 있었다.
힘은 넘쳐흐르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분노, 슬픔, 배신감... 등의 여러 감정이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리고 유메노는 그대로 제 발목을 묶던 수갑을 손으로 깨버렸다.
수갑이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페리드가 방 안으로 들어왔고, 그녀는 그대로 그의 목을 잡은채 그를 벽에 쳐박았다.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요!!”
유메노가 분노하며 눈물을 터뜨렸다. 모든 것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페리드를 바라보았다.
“.....”
페리드는 아무 말도 못한 채로 그저 바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아가씨가 망가지는게 싫었어.”
“그게 지금 변명이에요?!”
유메노는 다시 그를 방바닥에 꽂듯이 내리쳤고, 바로 그를 죽이려는 듯 그의 몸 위에 올라탔다. 하지만 페리드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은채 그저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 잔인한 짓을...”
유메노는 페리드를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점점 목을 잡은 손에 힘이 빠지었고 그저 서럽게만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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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슝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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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났을 때엔 침대 위였다. 익숙한 천장... 페리드의 방 이었다. 유메노가 정신을 잃은 사이 페리드가 제 방으로 옮긴 것 이었다. 그녀는 일어나 앉아 제 몸을 살펴보았다. 또 다시 목은 뻐근하였고 여전히 수갑이 채워진채였다.

“어째서....”
슬프고 분했다. 아무것도 못 한채로 그저 묶여있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모두에게로 돌아가고 싶어. 하쿠... 신야씨...”
유메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져 이불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을 구하려고 힘을 길렀는데, 이렇게 힘을 잃고 가둬지니 그녀는 그저 울 수 밖에 없었다.
이상한 주사를 맞고 나서부터는 은랑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혼자였다. 그녀가 부모님을 잃었을 때 처럼.

혼자라는 생각이 덮쳐오자 그녀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허윽... 흐윽....”
울어서 숨이 막히는 건지, 아니면 이 상황이 자신에게는 공포인건지 더 이상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혼자 무너져가고 있었다.


한참을 울다 지쳐 유메노는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고, 페리드는 그제서야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울음소리를, 숨죽여 서럽게 우는 울음소리를 가만히 방 밖에서 듣고만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유메노를 위해서였다는 말도... 그 어느 말로도 그녀에게는 위안을 주지 못 할것이 분명하니.

페리드는 눈물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예쁜 얼굴이 엉망이 되었네, 아가씨.”
자신도 이 상황이 싫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만은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아리아드네에게 부탁을 한 것인데. 그녀는 죽은 것 만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그녀를 자신이 품어줄 수는 없는 것인지 페리드는 그저 그녀를 계속 쓰다듬을 뿐 이었다.
날개를 꺾여 죽어가는 새를 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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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슝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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