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칼이 부딪히는 소리, 난장판이 된 전장에 은빛 머리칼을 가진-꽤나 아름다운 흡혈귀가 사뿐히 걸어왔다.
그는 하나로 묶은 머리를 흩날리며 다른 흡혈귀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는 그녀-유메노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간신히 붙잡고 있는 정신을 놓기 직전이었다.

‘아...’ 눈 앞이 흐릿해.

그녀는 비틀거리며 쓰러졌고, 울퉁불퉁한 땅 위로 부딪히기 직전, 그녀에게 다가오던 흡혈귀가 그녀의 몸을 받아내었다. -페리드였다.

페리드는 그녀를 공주님을 안듯이 조심스레 안아들었다. 비록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얼굴 이었지만, 신비로워보이는 빛나는 은발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와 반대로 제복과 몸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있었다. 마치 그녀의 정신 처럼.

“아, 그대는 정신을 잃어도 아름답군...”
페리드가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한쪽 눈을 가린 그녀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감은 눈 마저 아름다워 눈 위에 키스를 하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며.

“탕-!!”
“...!”
난데없는 총소리에 페리드는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백호환... 히이라기 신야였다.
“이런이런... 이게 누구신가.”
페리드는 비릿하게, 하지만 비웃듯이 웃으며 신야를 바라보았다.
“....” 신야는 굳은 얼굴로 총을 그에게 겨냥했다.
“내 말 좀 들어보지 않겠어?”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신야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여전히 총을 겨눈상태로 말했다.
“그녀는 아직 욕망을 모르지. 그래서 더 호기심이 가는 거일지도 몰라. 그런 그녀가 피를 빨리는 쾌락에 물들면... 상상만해도 짜릿한걸? 안그래?”
페리드는 웃으며 그녀의 목에 자신의 이를 박아넣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신야가 탄을 쏴대는 탓에 그녀의 목에서 입이 떼어졌다.

“그녀를 돌려줘.”
여전히 화가 난 듯 신야는 페리드를 노려보았다.
“후후, 싫은걸. 비록 가문 때문에 망가졌지만... 그녀는 아직 순수해. 너희 같은 인간에게 있으면 더럽혀질 뿐이야.” 페리드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신야를 똑같이 노려보았다. 둘의 사이에 오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흡혈귀들은 더럽지 않다는 뜻인가? 오만하군.”
“그게 우리의 매력이지~”
신야가 코웃음을 치자 페리드도 똑같이 맞받아쳤다.
“그녀는 너희들을 증오해. 빨리 그녀를 놓고 사라져”
“후후, 과연 그럴까? 그녀가 인간들이 뭘 해왔는지 알아버린다면... 그녀는 여전히 너네 편일까? 자신이 믿었던 이상과 신념이 무너지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 상상만해도 벌써 짜릿해! 무너진 그녀의 표정이라니! 이 세상 무엇보다 더 아름다울거야!”
페리드가 재밌단 듯 웃으며 말을 하였고, 그로 인해 신야는 얼굴이 더욱 사나워졌다.

“왜, 맞잖아? 그 잘생긴 얼굴을 그렇게 찌그러뜨리지마~ 걱정마. 아가씨는 내가 행복하게 해줄테니까 말이야.” 페리드는 유메노를 품에 더 굳게 안으며 그녀의-상처 투성이인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 그를 보자 신야는 속에서 부터 화가 치밀어 올라 그에게 총탄을 퍼부었다.
하지만 페리드는 가뿐하게 피하며 그를 비웃었다.
“이런 이런. 아가씨가 다쳐도 좋다는거야? 무섭네~”
“좋은 말로 할때 그녀를 두고 가.”
여전히 매서운 눈으로 신야가 페리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에 비웃듯 페리드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싫다니까. 그녀는 내 것으로 만들거야. 그녀는 영생의 삶을 사는 나에게 유일한 즐거움인걸~”
페리드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그에겐 백호환이 무수히 달려들었고, 그는 마치 나비가 춤을 추듯 탄환을 피하면서도 그녀를 지켰다.

“으...”
소란스러움에 눈을 뜬 유메노는 자신의 눈 앞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
“어라, 우리 아가씨 눈을 떴구나?”
페리드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하자 유메노는 그에게 주먹을 날렸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아래로 떨어졌다.
“...!!” 아직 부상이 온전히 낫지 않아 그녀는 착지 자세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런...!”
그녀를 얼결에 놓은 페리드도 놀라 떨어지는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 그녀는 놀라 눈을 꼭 감았고,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받아준 사람은 신야였다.
“ㅎ...히이라기 소장님..”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연인을 되찾은 신야는 다행스러우면서도 괴로웠다. 페리드의 말엔 틀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래도 그는 그의 연인을 향해 다정히 웃어주었다.


가문이 그녀를 망가뜨려도, 자신은 그런 그녀를 지지하겠다 다짐하며.

Posted by 슝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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